2019/10/03 23:11

조커 joker 2019. 비평


조커 그는 누구인가?
조커는 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악당의 이름이다. 흔히 빌런 (villan) 이라고 부르는 악당들은 하나같이 다 멋지지만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악의 화신 조커, 그러나 그는 진정한 휴머니즘을 아는 미친 어릿광대다.
시계를 11년전으로 되돌아가보자. 때는 2008년 그 때만 해도 블록버스터라는 영화는 고질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따. 일단 총이 많이 나와야하고 플롯은 단순하고 폭발이 많아야 되고 주인공이 승리해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러나 이 젊은 감독이 나타나기 전까지 만해도 우리는 안일한 극장 영화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집나간 애인 이 돌아오듯,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도 우리를 고담시로 환영했다. 극악의 혼돈의 도시 고담, 그곳엔 자경단 경찰등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는 신처럼 광신도 팬들에게 여겨진다.

그러나 영웅은 어둠속에서 태어나는 것, 이 영화의 주된 테마인 born in darkness.는 선과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며 우리를 다시끔 성찰하게 한다.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으며 과학에 눈이 멀어 도덕적으로 타락했는가를 보여주는 영웅, 배트맨. 그는 박쥐의 상징을 가져다 쓴 형상변형 영웅이다. 물론 거기다 부자다, 놀란은 죽어가던 워너의 배트맨 시리즈를 소생시켰다.
그는 영국인 이며 밥케인 원작의 만화를 읽었고, 카피라이터와 승무원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무튼 다크나이트 속 영웅과 악당의 상은 오로지 놀란과 그의 동생의 구상이 였으며 각색과 탈고를 거듭해 새로운 배트맨을 극장으로 모셨다.
거기다 히스레저라는 비운의 매우를 캐스팅한건 정말 잘했다고 본다. 그는 젊은 나이에 약물로 인해 사망하고 (다크나이트가 그의 유작) 팬들을 슬프게 했다. 그의 연기는 매우 리얼했으며 수준급이였다. 캐릭터에 전히 빙의 된 그는 끝내 연기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불안에 시달렸고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배트맨1>의 조커 잭니콜슨은 히스에게 "조커의 캐릭터에 너무 빠져들진 말것 " 이라고 조언하긴 했으나 히스가 그 조언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이제 다크나이트의 현대적 위상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왜 그렇게 심각해?>
우리가 삶을 살떄 우리는 사회의 질서를 지키게된다. 자연스럽다는 거다. 그러나 그 라인을 벗어나 활동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법을 부정하며 자신의 도덕률에 기초하여 움직인다. 그러나 그들의 대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지도 사회에 재산을 환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진지하며, 그들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러나 조커는 그렇지 않다. 조커는 진지하지만 농담으로 사회를 쓸모없다고 생각하여 머릿속의 자신의 사회와 원칙을 지워버린다. 그게 바보지 뭐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것이다. 그러나 혼돈의 대변인이며 동시에 자신이 할수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임하는 자는 흔하지 않다. 바로 조커가 그 예다. 조커는 동전의 양면처럼 선과악을 구분해놓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불가능하다, 할 순 없다는 전제를 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이며 그가 바로 정의다. 폭력적이기 까지도 하다. 그리고 사연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조커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입을 찢어버리는 것을 목격하고 그때부터 이상해진듯 하다. 죽을 만큼의 시련을 겪게되면 사람이 이상해진다. 라는 격언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영화 첫부분에 밝힌다. 니체의 죽을 만큼의 시련을 겪게 되면 사람은 강해진다를 변형시킨것으로 stronger->stranger.로 철자 하나 바꿔 감독의 재치를 보여주고 있다,.
과연 땅에 떨어진 주인없는 돈은 누구것일까. 그 돈은 사회를 상징한다고 치자, 그렇담 사회는 우연한 것일까?
그 돈을 줍는 행위는 사회적 참여 행위라고 볼 수있을까, 그돈을 무시한채 계속 갈길간다면 그것은 반사회적인 것일까? 그러한 잣대로 사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것이 너무 피곤하고 조악하지 않은가? 그냥 웃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조커는 그돈을 태울것이다. 바로 사회라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 그것이 조커의 문제해결방법인데 꽤 과학적이다. 신을 죽이자. 그러면 평화가 찾아올것이니/. 배트맨은 그런영화다. 조작적 정의를 표방하는 영화이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토드 필립스와 호아킨 피닉스.>
매년 베니스에 서 열리는 영화제가 있다. 바로 베니스 영화제인데 <조커>가 올해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개봉전 부터 화제였던 이 소식은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 그러면 영화가 괜찮다는 소리야? 그런 소리가 아니다.
영화제 수상과 평론가들의 평은 영화의 호감도, 흥행과 관련이 없다. 작품성 또한 주관적인 것이여서 평들이 좋다고 그 영화의 작품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이미 찍어졌으며 이미 상영되었다.
운명이란 것이 그런것인대 프레임속에 들어가고 나면 나올 수잆다.
세계 3대 영화제가 잇다. 베니스, 칸 ,베를린 영화제로 다들 높은 영화제이다.
과정 또한 아름답다. 토드필립스 감독은 코미디전문감독인데 새로운 악의 기원을 다룬 진중한 영화를 찍다니 본인 편견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 셈이다..
아무튼 조커를 어제 보았는데, 꽤 거슬리는 장면 뺴고 이 영화의 연결도는 매끄럽다. 조커의 말대로 이 영화가 상징하는것은 계단 , 웃음, 병, 망상 등이다. 조커는 정치적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절대로 관조적이지도 않고 슬데없이 무게 잡지 않으며 주인공의 망상과 코미디언이 되기위한 현실적인인 노력을 담아냈다.조커가 웨인기업 직원 3명을 죽이고 첫 살인 끝에 지하철역 화장실으로 들어가 춤을 추는 장면은 인과적으로 전혀 말이 안되나 충분히 그럴수 있어라는 생각을 도출해내는 데 성공하였다.아니 인과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또한 빈 총으로 자신의 턱에 겨눈채 자조적인 조크를 하는 장면을 보며 아 이 감독이 참으로 보편적 웃음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구나를 느꼈다.
또한 토마스웨인 이라는 기업총수를 등장시킴으로서 배트맨의 탄생과 조커의 관계 까지 시원하게 해결해놓은 자연을 보면 감독이 참으로 다음 주자에게 배려를 햇구나는 느꼈다. 그리고 난쟁이 친구를 죽이지 않음으로써 프릭쇼라는 옛날 서커스속 난쟁이들이 진정한 웃음을 아는 존재 라는 것을 말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또한 어머니를 죽이고 더욱더 완벽한 악의 모습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보며 윤리적인 문제를 논하는것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고 우리모두 조커이며 정신질환자를 까지마라 라는 메시지를 주장하는 조커가 충동적인 격발로 인해 머레이를 죽여버리는 시원하게 끝내는 모습을 통해 우린 미디어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자극적임을 추구하는지 사구려 농담으로 케네디를 풍자한 미국의 코미디언 빌힉스를 상기시켰다.
                                 <베니스 영화제 로고>
                                                     <코미디를 하고 있는 빌 힉스.>
내가 보았을때 조커는 별로 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네버랜드의 환상속에서 나오는 삐에로도 아니다.
 그는 희비의 기로에 서있는 진짜 남자다. 우울과 웃음의 상관관계를 밝혀낸 철학자이기도 하다.
또한 영화속에서 "토마스 웨인이 내 아버지야!"라는 전형적 망상장애 환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아서의 개인적 행동들을 납득시키는데 충분했고 페니의 편지속에 당신아들과 나를 도와줘요 라는 애매한 지칭을 함으로서 자신이 웨인의 아들이다 라는 망상이 일어난게 아닌가를 추측해본다. 지하철 폭력사태는 아쉬웠고 좀 더 가진 자를 처벌할 명분을 만드는 것이 이영화가 했어야할 일이었다고 본다. 미디어에 대한 통찰과 코미디와 인생, 그리고 서민들의 분노를 부자와 거지를 대치시킴으로서 테제를 정반합하는 모습을 보며 결말이 어찌될까 흥미진진하게 2시간 동안 보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영화를 5점만점에 2.5점 을 주었다. 왜냐 너무 위험한 감성이고 조커라는 캐릭터가 원래 애들보기에 위험한 캐릭터이긴 하나 사람의 감성을 흐트러놓는 그런 영화여서 너무 위험해 점수를 짜게 준것이다. 아무튼 좋은 영환 아니다. 추천하고싶지도 않다. 난 영화를 추천할때 이제 기준이 생겼다. 얼마나 추천받는 사람에게 유해한 영화인가? 왜. 방금막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예스맨 같은 영활 추천할순 없지 않은가.우린 적어도 그러지 말아야 한다.
바로 윤리적인 고민이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영화추천에는. 평론가의 덕목이란 그런것이다. 자신의 취향이 이정도 로 대단하다가 아닌 이 영화가 저사람에게 맞을까? 아니면 여러사람에게 대중에게 소개할 영화라면 이 영화가 얼마나 보편적인주제를 가지고 있는가, 아님 감성적으로 괜찮은 영화인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그것이 예술이고 예술이 바라던 바니까.

덧글

댓글 입력 영역